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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11월이 되면 생각나는 영원한 가객입니다. 전에 포스팅한 유재하와 절친했고 또한 같은 날인 11월 1일 하늘의 별이 되어버린 가수입니다. 김현식하면 언더그라운드의 제왕, 신촌 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등의 여러 키워드가 생각이 납니다. 저는 김현식이라는 인물, 그리고 김현식의 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은 11월 1일 세상을 떠난 영원한 가객 김현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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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의 어린 시절

김현식은 서울특별시 중구 인현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김현식의 아버지는 사업가로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고 할아버지도 충남 홍성군의 알아주는 유지였다고 합니다. 또한 김현식의 외할아버지 역시 만석꾼의 아들로 와세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영문학자라고 합니다.

 

1964년 서울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외가인 충북 옥천국의 죽향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고 합니다. 또한 5학년 때 서울의 삼청초등학교로 다시 전학을 가게 됩니다. 당시 6학년에 전인권이 재학중이었으나 서로 모르는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학군제의 시행으로 김현식은 5학년 때 다시 수유초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초등학교를 굉장히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보성중학교에 전교 4등으로 입학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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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은 보성중학교를 다닐 때 사촌형인 양국정이 기타를 가르쳐주면서 음악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김현식은 음악에 빠져들면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던 성적이 하락하고 부친의 사업이 실패하면ㅅ서 한동안 방황했다고 합니다. 김현식은 당시 명문 고등학교였던 경기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낙방하고 명지고등학교에 전교 3등으로 입학합니다. 김현식은 입학 후 음악 동아리에 가입했는데 선배의 악기에 손을 댔다는 이유로 손찌검을 하자 대들어 싸운 사건으로 밴드부에서 탈퇴를 당하고 이로 인해 고등학교 생활에 흥미를 잃은 김현식은 1학년을 마치기 전에 자퇴를 하게 됩니다.

김현식 11월 1일 유작 내 사랑 내 곁에 작고 언더그라운드 신촌 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간경화 가객 밴드부 자퇴

 

김현식은 자퇴 후 검정고시 학원에 다녔으며 1975년 검정고시에 합격합니다. 하지만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고 기타를 메고 종로의 한 음악 다방에서 통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명동의 큰 무대로 활동 범위를 넓혔습니다. 이 당시 김현식은 사촌형인 약국적의 소개로 종로의 한 DJ를 찾아가 노래를 부르는데 이 사람이 20대 중반의 전유성이었습니다. 전유성은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깝다며 적극적으로 가수가 되길 권유했다고 합니다.

김현식 11월 1일 유작 내 사랑 내 곁에 작고 언더그라운드 신촌 블루스 봄여름가을겨울 간경화 가객 전유성 DJ 음악다방

 

김현식은 이후 여러 곳을 떠돌며 통기타를 연주하며 다녔습니다. 이 때부터 언더그라운드에서 주목받는 신인으로 전인권, 한영애 등 선배 보컬들 사이에서 활동하며 검은나비, 동방의 빛, 신촌블루스 등의 그룹사운드에서 보컬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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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김현식의 시작

김현식은 1978년 정식적인 데뷔를 준비했으나 대마초 흡연 협의로 몇달간 옥살이를 하며 미뤄집니다. 이후 똑같이 대마초 경력 떄문에 가수 활동이 막혀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던 이장희의 주선으로 1집 앨범 녹음을 완료했으나 상황을 우려한 레코드사의 판단으로 앨범 발매가 계속 미뤄지다가 1980년 김현식 자신의 이름을 내건 데뷔 앨범 봄여름가을겨울/당신의 모습을 냇지만 처절하게 실패했습니다. 이를 비관한 김현식은 방황하다 아내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처자식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피자가게를 열었지만 망한 뒤 다시 밤무대 활동에 전념합니다. TV에 출연한 김현식을 눈여겨봤던 김영 사장의 안목으로 동아기획에 스카우트되어 1984년 2집 사랑했어요를 발표하며 좋은 반응을 얻습니다. 그 후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제작한 3집은 수록곡 비처럼 음악처럼이 히트하며 3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며 호평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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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방송 출연만은 힘들었는데 촬영 도중 PD와의 의견 충돌로 촬영장을 박차고 나오는 등의 태도는 전국적 인지도 형성에 걸림돌이 되었고 이 무렵 이혼하며 아들과도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김현식은 신촌블루스의 멤버로서 1집을 준비 중이던 1987년 10월 전인권, 허성욱 등과 함께 다시 대마초 흡연 및 필로폰 투약 혐의로 구석되었다가 동아기획 김영 사장이 선처를 부탁해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됩니다.

 

김현식은 1988년 2월 63빌딩에서 사죄의 뜻으로 삭발을 하고 재기 콘서트 무대에 오른 후 음악 활동에 대한 열의를 다시 불태우며 밤샘 녹음 끝에 1988년 9월 4집 앨범을 발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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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은 봄여름가을겨울 활동을 하며 유재하와도 친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한 후배였던 유재하가 1987년 11월 1일 교통사고로 숨지자 대성통곡하면서 한동안 술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유재하에 대한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유재하, 11월에 별이 된 천재 싱어송라이터

11월 1일은 많은 천재들이 별이 된 날입니다. 오늘은 11월 1일 세상을 떠난 천재 싱어송라이터 유재하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유재하, 천재의 유년시절 유재하는 1962년 6월 6일 경북 안동군 하

issue1.jnnstory.com

 

김현식, 영원한 가객의 마지막길

김현식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의 OST를 녹음할 때부터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1990년 5집 앨범을 발표할 당시 의사가 술을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죽는다고 경고할 정도로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습니다. 한 번은 신촌블루스 방송 공연을 준비하던 아침, 객원 보컬이었던 한영애가 김현식에게 술냄새가 나자 "현식아, 아침웁터 술을 마시면 어떻게 하냐"고 꾸짖자 김현식이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몸이 떨려서 마이크가 입에 닿질 않아"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얼굴이 붓고 복수가 가득 찬 상태에서도 펑퍼짐한 옷으로 복수가 찬 배를 가리고 공연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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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은 병원에 입원하기 전 자신의 집에서 오랜시간 밥도 먹지 않으며 술과 담배만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마지막 6집 앨범을 낼 때에는 그를 이전부터 아끼던 동아기획의 김영사장을 만나서 "언젠가 술 먹다가 죽고 했는데" 라는 식의 말을 했고 간경변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됩니다.

 

김현식은 병원에 입원한 이후로도 자주 탈출해서 지방으로 공연을 다닌 정도였고 술을 마시고 앨범 녹음을 했다고 합니다. 김현식은 병실에 입원해서도 항상 노래를 했으며 같은 병실에 입원한 환자에게 직접 15곡 정도를 불러준 적이 있는데 이를 휴대용 카세트에 녹음했다가 김현식이 작고한지 7년 뒤인 1997년 동아기획에 전달했고 이후 김영 사장이 반주를 추가해 2013년 정식 앨범으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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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1월 1일 오후 5시 20분경 김현식은 이른 나이인 32세에 자신의 자택에서 간경화로 인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누나가 임종을지켰고 전날 각혈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김영 사장은 김현식의 누나에게 "갔어요" 라는 한 마디로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합니다.

 

김현식의 유작 내 사랑 내 곁에

김현식의 유작이 된 6집 내 사랑 내 곁에는 100만장이 넘게 팔리는 대박을 쳤으며 1991년 12월 25일 가요톱텐에서 골든컵을 수상햇지만 이미 김현식은 세상에 없었기 때문에 김현식의 아들인 김완제군이 대리 수상했습니다. 1991년 김현식은 골든디스크 대상을 차지했고 김현식의 어머니와 아들인 완제군이 대리 수상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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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20년 12월 16일 Mnet의 특집 방송 '다시 한 번'에서 AI 기술로 그의 모습과 목소리를 복원해 생전에 그가 부를 수 없었던 노래인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부르는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하지만 AI화에 필요한 형태의 데이터를 확보하기 힘든 등의 이유로 완벽하게 복원하지 못해 아쉬움을 샀습니다.

 

영원한 가객 김현식에 대한 이야기들

김현식의 정체성은 블루스와 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보통 록커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 달라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또한 김현식의 목소리는 굉장한 미성이었지만 이후 음색을 바꾸려는 본인의 노력과 평소 술담배를 즐겨하던 영향이 겹쳐 굵은 목소리와 쇳소리가 나는 허스키 창법을 구사하게 외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목소리가 바뀐 것은 4집 이후로 특히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가 크게 히트하면서 대중들에게는 김현식 하면 거칠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떠오르게 됩니다.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은 봄여름가을겨울, 사랑 사랑 사랑, 사랑했어요, 추억만들기 등의 노래가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일 정도로 유능한 싱어송라이터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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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은 생전 상당히 엄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으며 한 번 화가 나면 상당히 무서워지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ㅎ바니다. 후배들에게도 군기가 아주 강했지만 유재하만이 김현식에게 군기가 잡히지 않은 후배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김현식의 히트 넘버들을 가지고 창작한 뮤지컬인 '사랑했어요'가 공연되기도 했습니다.

 

글을 마치며

저는 김현식이라는 가수의 노래, 그리고 왠지 모르게 쓸쓸해보인 그의 삶의 발자취 또한 매우 좋아하는 편입니다. 오늘은 김현식의 기일인 11월 1일입니다. 그의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를 비롯해 그가 남긴 음악들을 들으며 김현식이라는 사람을 추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의 포스팅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클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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